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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데우기: 맛있는 차와 마음이 오가는 대화에는 예열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은 그릇을 덥히기 위해 기꺼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갈 때 자신의 일부를 벗어내는 듯 보였다. 한 몸이었던 물줄기와 수증기는 그릇 안에서 둘로 나뉘고, 하나는 손바닥의 온기로, 또 하나는 눈으로 스며드는 온기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방금 전


파랑의 차, 동장윤다 2024
맑은 노란빛이다. 정성껏 우린 햇차를 보듬이에 따라 두 손 가득 쥐고 찻물에 비치는 물그림자를 본다. 잔잔한 듯 일렁인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물결친다. 찻일 하던 어느 오후, 동장윤다가 만들어지는 한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곡에 분주한 마음이 잠시 멈췄다.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라모, 라벨 그리고 알캉의 곡을 연주한다. 아는 곡을 모르는 듯한 기분으로 듣는다. 그는 앨범의 제목, <WAVES>처럼 한 곡, 한 곡을 물결처럼 연주한다. 빼어난 연주자의 연주에는 강약이 있고, 완급이 있다. 그의 연주에서 나는 강과 약 사이에 더 많은 강과 약이 있고, 느림과 빠름 사이에 또 다른 박자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흐르는 물을 가까이서 보면 물결의 높낮이가 확연하지만,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반짝이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연주를 들으며 강이 흐르는 풍경을 자유자재로 줌인, 줌아웃하며 유려하게 그려가는 전경을 떠올린다. 생명이 부글부글 끓어오르
방금 전


입하, 산에 들에 자라는 식물에게 배우다
보름 전 곡우더니 오늘 입하 날입니다.
입하 전 스무날 남짓 동안 우리나라 산에 들에 자라 핀 식물들 새순 거의 다가 사람 먹거리 되고, 들짐승 산짐승의 먹이도 됩니다.
살큼 데쳐 무치면 향기는 맑고, 맛은 부드러우며, 빛깔이 순하고 곱습니다.
9시간 전


우수 뒤에 얼음같이
엊그제 설을 쇠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 모두 반갑고 미더움에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새해 소망과 덕담을 주고받았습니다.
길이 안 보이고, 견디기 힘든 불안이 쌓여 얼어붙은 시대를 걱정하기도 했지요.
2월 18일


冬至
茶는 이상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다.
이상은 피안에 있어 바라볼 수는 있지만
이룰 수는 없다.
기도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룰 수 있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룰 수는 없지만 바라보면서
꿈꿀 수 있는 것도 좋은 것이다.
2025년 12월 21일


霜降, 말씨로 생각을 꽃 피우는 일
찬 서리 내리면 정녕 추위 온다던 기별이다.
추위로 얼어 터져서 영 못쓰게 되기 전에 서둘러야 할 일 한두 가지 아니다.
그중 우리 차문화의 독자성 갖추는 일도 화급 다투는 일이다.
사람이란 살아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듯 차문화도 그렇다.
알뜰하게 갖춘
2025년 10월 22일


무심한 江 가을 산모롱이 휘돌아가기 전에
무심한 江 가을 산모롱이 휘돌아가기 전에
물드는 화살나무잎 위에 참회를 적어
강물 위에 띄워 보내고는 잊어버리라고
못 잊어도 살다 보면 잊히는 것이라고
자릿수건 거두어 접고
두 손을 얹는다.
2025년 10월 7일


그 소식 듣거든
自然으로 가는 길의 안내문 16 "꽃무릇 붉고 아슬한 찬란함의 이승에서" 김장 채소밭 이랑마다 낮은 짧아지고 길어지는 밤이 무 배추 어린 이파리 위에 색깔로 넓이와 키로 살아있다. 쉼 없이 가고 또 간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낮과 밤 짧아지고...
2025년 9월 22일


거울에 비치는, 풍경들
백로 날 아침 이슬은 맑고 깊은 고요의 거울이다.
맑기는, 잊고 살았던 굽이굽이 옛길들 다 비치고
깊기는, 과거 현재 미래 다 잠기고도 남으며
고요는, 감추고 감춘 부끄러운 죄의 숨 가쁜 맥박소리 들린다.
2025년 9월 6일


잎은 꽃을 기다리고
밤새 相思花 몇 송이가 피었습니다.
잎은 꽃을 기다리고, 꽃은 잎을 기다린 지 어언 수 천 년
올해도 잎 만나러 꽃대궁 높이 그리움 깃발처럼 피었습니다.
상사화도 죄 많은 내 이마 짚어주십니다.
2025년 8월 22일


참나리꽃 다 지기 전에
뜨겁고 숨 막히는 여름날들이 대서 무렵 참나리꽃을 피운다.
조금씩 짧아지는 낮과 길어지고 있는 밤 이야기와
매미와 풀벌레와 뻐꾸기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꾸 키가 크는 참나리꽃 다 지기 전에
그대 소식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25년 7월 21일


개망초 무리 진 여름 들녘에서 생각하다
옛사람들은 이 땅의 산과 들에 나는 거의 모든 풀과 꽃과 그 뿌리를 먹을거리로 삼았고, 독이 있으면 그 독을 다스려 약으로 써왔다. 반면, 개망초는 이렇다 할 쓰임새가 없다. 옛사람들이 보기에 개망초는 제 잘난 맛으로 창궐해 논밭 작물들을 위협하는 것
2025년 6월 20일


芒種有感
망종 즈음 바다를 낀 들녘에 가서 보았다.
썰물 진 갯벌엔 바지락 캐는 사람 몇이 엎드려있다. 길섶에는 허름한 유모차가 버려지듯 서 있다.
그제야 나는 갯벌의 사람들이 우리 동네 할머니들인 줄 알았다.
저녁 무렵이면 바지락 담은 낡은 대바구니와 기
2025년 6월 5일


때가 되기를 기다리다
하늘 뜻이 땅에 닿으면 땅속, 땅 위의 만물은 일제히 움이 튼다. 새순이 나와 잎과 줄기로 자라고 꽃이며 열매가 생겨난다. 풀, 꽃, 나무 모든 것이 인간과 동물의 먹이가 되고 집이 되고 옷감이 된다. 약이 되기도 한다. 사계절의 색이 되고 풍경이 된
2025년 5월 20일


小滿, 텃밭 소묘
강낭콩 콩노굿 이는 때다. 어른 무릎 높이로 자란 콩의 너풀대는 잎 사이사이로 흰색, 분홍색 꽃이 앙증맞다. 얼핏 여느 시골 콩밭과 다를 것 없어 보인다. 밭 가로 가까이 다가가면 보인다. 동다헌 콩밭 이랑과 이랑 사이 고랑에는 열무가 자란다.
2025년 5월 20일


푸른 사월 들녘에 서면
아무것 탓하지 않고 푸른 사월 들녘에 서면
흙 속 저승 일이 낯익은 풀꽃으로 피지 않더냐.
부디 곡우 날 맑고 부드러운 차 한 잔 달여
목숨의 아름다움 챙겨보시라.
2025년 4월 19일


붉디붉은 그리움 끝에 맑고 밝은 아침이
1858년 청명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삼년상 치르던 날에 초의 스님은 제문을 적어 바치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죽음을 애도하였다.
초의 스님은 추사를 처음 만난 1817년부터 추사 선생이 영별한 1856년까지 서른아홉 해 동안 교류하
2025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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