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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통해 돌아보는 것들, 물이 중요하다 下


동장윤다 차살림법 :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2부_24장


차살림 준비

_찻물











물이 차를 살게 하는 몸이라 했으니 그 물성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물은 흘러가는 자신 앞에 어떤 사물이 놓여 있다고 해서 이를 장애물로 여기거나 치워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해 갈등을 빚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두고 휘감아 돌거나 비껴갈 따름이다. 설악산에 가면 한창 걷는 깊은 산골짜기 길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숙이면 부딪히지 않습니다’. 산에 가면 지자체에서 세워 놓은 시도 있고, 명언도 있고, 속담도 있는데 그 어떤 현란한 미사여구보다 더 기억에 남는 한 문장이다. 산의 행색을 보전하기 위해 함부로 큰 나무들을 자르지 않고 사람더러 알아서 잘 피해 가보시라는 멋진 배짱이다. 좋은 시어(詩語)는 한 번의 눈길로 여러 번의 생각을 일으켜야 한다는데, 그에도 걸맞다. 숙이면 부딪힐 일이 새삼 어디에 있겠는가. 물은 그와 같아서 그저 비켜 지나갈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경험해 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문제를 마주하는 경험 이후의 일이다. 다만 쓰러뜨리려 하지 않고 휘감아 돌아갈 뿐이다. 물론 쓰나미는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찻일을 이야기하며 쓰나미와 같은 비유를 둘 이유가 없다.


동시에 물은 가능하다면 아래로 향한다. 낮은 곳은 사람들이 싫어한다. 낮을수록 으레 더럽거나 어두울 가능성이 높다. 언어학에서 설명하기로 옛날 사람들 역시 가능하면 높은 곳에 살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고대 독일어에는 고지독일어와 저지독일어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말 그대로 높은 곳(高地)에서 사용한 독일어와 낮은 곳(低地)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한 독일어라는 뜻이다. 높은 곳에는 귀족과 기사, 왕족들이 살았고, 낮은 곳에는 일반 백성들이나 천민들이 살았다. 재미있는 점은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살아남은 것은 저지독일어뿐이었다는 점이다. 권위와 제한을 바탕으로 하는 폐쇄성은 역사적으로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낳았다. 언어학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종교나 사회의 흥망성쇠도 대부분 그러한 편에 속했다. 낮은 곳에 머무를수록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을 한 가지로 정의하지 않으니 긍정적인 변수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많이, 더욱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다. 물은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무르며 고립되기보다는 더욱 다양한 존재들을 적시기를 선호한다. 그렇게 새로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물은 자기 몸을 빌려주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를 태어나게도 한다. 물의 몸을 빌려 차가 우러나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국을 끓여 먹으며, 세상 모든 먹거리를 비로소 살게 한다. 그러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마치 완전무결하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이미 내심 어느 한구석으로 치우친 존재가 만물에 고르게 사랑받을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것은 회색이 아니다. 우유부단한 것과도 다르다. 스스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이방인』이든, 「변신」한 존재가 되든, 아니면 무엇도 될 수 없겠지만 물과 같은 사람은 반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마치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햇볕과 같은 사랑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물은 생명을 돕는다. 만물에 베풀지만, 베푼다는 생각조차 없으므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차를 이야기하면서 물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은 물이 가진 이 선(善)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천오백 년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이 사랑했고, 그 안에서 백미(白眉)와도 같은 또 수없이 많은 인물이 차를 사랑하고 곁에 두었던 이유다. 차가 그저 소비하는 식문화나 소일거리에 그치지 않았던 것은 그 안에 의미를 쌓아두었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 하나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평생에 걸쳐 곁에 두면서 대를 이어 전승할 이유도 없다. 차는 물이 가진 미덕을 통해 공허한 관념이 아니라 실천을 뼈대로 삼게 되었다.


우리 동다살림법은 텅 빈 곳으로 흐르고, 낮은 곳으로 흘러 빈 곳을 채우고, 움푹 파인 곳을 메우는 마음의 단련법에 가깝다. 그러므로 내가 비로소 가득 찼을 때 흘러넘쳐 또 다른 빈 곳으로 흘러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차를 배우고, 알고, 마시는 일은 이처럼 물과 같은 물성을 우리의 삶에 흘러들게 하려는 노력이지 않을까.











정 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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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Ernst, Marine, Brühl 1891 - 1976 Paris, oil on cardboard 50,5 x 40,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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