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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골라 자릿수건 위에 올리기: 서로 다른 것끼리 어우러지다


찻자리 위로 이야기를 펼치다 : 동장윤다 차살림법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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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풍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차살림 그릇. 이것은 풍경 사진일까, 정물 사진일까.



피카소의 1912년 작품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Chair-Caning>은 그림 안에 글자가 등장하고,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닌 실제 밧줄이 그림을 둘러싸고 있다. 피카소는 이 작품 이후로 화폭에 붓으로 그린 그림과 더불어 색종이, 헝겊, 벽지나 나무껍질, 신문이나 잡지 등을 캔버스 위에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모두가 그의 기이한 천재적 행보를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피카소의 이 작품은 회화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리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최대한 닮게 재현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콜라주라고 부른다.

피카소의 후예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온갖 사물을 실험하고 사용했다. 그들은 회화가 구현하고자 하는 리얼리티와 실재하는 공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을 주목하고 거기에 의미를 담았다. 이질적인 재료를 한 곳에 갖다 붙이고, 직접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잡지의 삽화를 오려 넣어 냉소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조리와 풍자의 영역으로 콜라주를 끌어당겼다. 이러한 경향은 몇 년 전 별세한 레온 페라리같이 평생을 사회 부조리와 싸운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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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Still-life with Chair Caning, Spring 1912



뚜렷한 목적으로 만든 물건에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 느닷없이 결합하는 경향을 싫어하는 순수주의자에 가까운 나는 되려 콜라주는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콜라주란 요새 유행하는 은어 ‘혼종’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혼종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서로 뒤섞인 것이라면, 콜라주는 분명한 의도로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는 창의적인 실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콜라주는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콜라주는 기성에 대한 의심이나 비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이 이유 있는 반항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몇 주 전 자릿수건을 펴며 시작했던 오늘의 찻자리가 드디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당신이 콜라주를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 장의 자릿수건을 펴고, 그 위에 서로 다른 모양과 색, 가능하면 서로 다른 작가의 찻그릇을 올려 본다. 조감과 부감을 더불어 사용하며 각각이 하얀 천 위에서 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각각의 위치를 조정해 보거나 구성원을 하나씩만 바꿔가며 ‘오늘의 찻자리’를 완성한다. 오늘 마음에 안 들었다고 그 조합법을 버릴 필요는 없다. 하늘의 흐린 정도나 빛의 양, 바람의 크기와 당신의 기분에 따라 어느 날에는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기성의 한 세트라는 개념을 버리는 것이다. 마치 물감을 칠한 옆과 위로 천과 종이, 실타래와 밧줄을 서로 어우러지게 하듯이 당신만의 세트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차살림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콜라주이며, 바로 그 날의 찻자리를 온전히 당신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다. 남 의식할 필요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해 보시라.





마음을 먹고 찻그릇들을 죽 둘러본다. 오늘 차 마실 그릇을 고르려면 아주 잠깐이라도 그 그릇의 색이나 형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과 저것 중에 선택하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차를 우릴 그릇과 담아 마실 그릇을 어떻게 조합할지 결정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지만 흥미로운 창작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리수건 크기의 화폭을 채우는 일기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쉽지 않은 이 과정이 365일 반복되고, 매일 한 점씩 365장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당신에게 더는 찻자리와 찻그릇에 관한 쓸데없는 정보들은 찾아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찻자리에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고, 용감해질 것이다. 아름다움에 관한 당신의 생각과 말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여 찻자리에서 마주한 상대에게 포근하게 깃들 것이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가 차살림 꾸리기를 제안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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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차실에 찻상을 차리고 앉아 마시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버리다. 풀밭 찻자리에 어울리는 찻그릇을 고르고 펼치기.

당신은 세상에 유일한 존재고, 당신이 오늘 찻자리에서 마주 앉은 그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처음 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밤새 나를 힘들게 한 어제의 나일 수도 있다. 당신과 당신의 찻자리 손님은 이모저모 마음이 잘 맞을 수도 있고, 온갖 주제에 관해 엇갈린 견해를 각자 피력할 수도 있다. 혹은 말로 꺼내기 편치 않은 미움이나 미안함 등을 서로 속에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것. 하얀 자리수건 위 서로 다른 색깔과 모양, 질감의 찻그릇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캔버스 위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것과 닮았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그 좋은 시간에 찻잔 너머의 사람,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마저 마주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것이 차살림이 차수건 위에 제각각의 찻그릇을 함께 올리는 간절한 이유이고 바람이다.  







롤링티




댓글 1개


하춘란
하춘란
2021년 5월 20일

동장윤다와 차살림법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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