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소리의 풍경


달마다 보듬이 04 : 숨 보듬이










김태훈 보듬이 2021
김태훈, 숨 보듬이, 2021년 作





고양이는 창가에서 잠이 들었다. 앞발을 턱 아래 괴고 둥그렇게 몸을 뉘었다. 곤히 자는지 꼬리가 점잖다. 보드라운 가슴만 자그맣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숨을 들이쉬고, 잠시 멈췄다, 내쉰다.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간질간질 참으며 지켜보고 있자니, 너머에 바람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대추나무 잎은 바스락거리고 소나무 잎은 찰랑댄다. 마당 원추리 이파리도 스르르 떨린다. 아주 작고 오묘한 소리가 일어났다가 한순간 멈추고, 고개를 들면 다시 바람이 인다.



어쩌면, 고양이의 숨소리는 바람 소리와 닮았다. 잠든 고양이가 숨을 쉬는 소리도 잠잠한 바람 소리도 그 자체로는 귀에 담을 수 없다. 새근새근 고양이가 잠들고 바람이 지나는 풍경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살아 있는 것들의 호흡 소리가 바람이 이는 지구의 소리와 닮았다는 상념은 본 적 없는 세계로 나를 이끈다.











"밤의 밤보다 깊은 우주와 작고 작은 인간은 본디 하나라지. 우주는 끝없이 흐르지만 마르지 않는 힘으로 가득 차 있어. 이 힘은 우주 속 크고 작은 모든 존재가 태어나고 움직이고 소멸하게 한다네. 그뿐일까. 힘은 존재마다 깃들어 있어. 태양이며 물과 흙, 구름과 바람 그 무엇에든 스며있지. 이 힘은 작은 인간의 들숨과 날숨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 들숨과 함께 생명은 깨어나고, 날숨 끝에 생명은 멎게 되니 말일세. 들숨과 날숨 사이에 깨닫는 것이 있지. 둘은 사실 하나라는 거야."



실제로 고대 인도의 현자들은 이런 상상을 했다. 굳건히 믿었고 삶의 축으로 삼았다. 바른 자세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수련은 요가에서 명상 수련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로 여긴다. 호흡과 함께 특정한 음절이나 진언을 소리 내어 반복하는 만트라 수련과도 잇닿아 있다. 수련과 기도를 거듭해 진리에 이른다. 이런 세계관은 요가와 힌두교, 불교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나의 호흡이 우주의 들숨, 날숨과 공명한다는 상상. 눈을 감고, 가슴을 크게 부풀려 숨을 들이마시면 태고의 공기와 우주를 돌아온 바람이 내 안을 채운다면. 잠시 숨 멈춰 내 안의 우주를 음미하고, 다시 천천히 길게 내쉬는 숨에 옹졸한 아집을 실어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요가에서는 나뭇잎이 바람에 움직이듯 마음은 호흡과 더불어 움직인다고 말하지 않나.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에 집중하는 사이 번잡한 감정이나 잡념이 스르륵 사라지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는 경험은 드물지 않다.


숨과 바람과 우주의 공명으로 이어지는 상상에서 강하게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이런저런 종교적 지식의 옳고 그름은 아니다.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이뤄지는 나의 들숨과 날숨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관조해내는 옛 구도자의 간절함이다. 여러 해에 걸쳐 몸으로 연습하고 실패를 겪고 더디게 나아가는 요가 수행자의 끈기다. 경전에 쓰인 문구 자체가 아니라, 경전 속 현자들이 말하는 체험에서 마음을 울리는 지혜를 읽는다.











가만히 멈춰 음미해야만 알아챌 수 있는 잔잔한 바람처럼, 눈에 쉬이 보이지 않되, 생생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담박하게 마음을 두드리고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것. 누군가에겐 진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겐 그저 자연스럽다는 형용사로, 혹은 한없이 허무하게 지나갈 뿐인 것들을 통찰해내는 성실하고 영민한 시선에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굽 없는 바닥 가운데 축을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곡선이 힘차다. 끌로 긁거나 새겨 넣은 것이 아니라, 물레 위에서 돌려 이은 선이다. 꽉 채우고도 남는 일 년. 부단한 습작 끝에 태어난 선이다. 두 손 가득 쥐고 돌려가며 만지고 쓰다듬으면 흐르는 선이 편안하기 그지없다. 감긴 숨이 펼쳐지는 듯, 바람에 흩날리던 잎사귀가 빙그르르 춤을 추듯, 먼 우주의 은하가 돌고 돌아 멀어지는 듯 흘러간다.


그릇에 담아낸 것은 우주를 돌아온 들숨과 날숨.


손에 보듬어 안은 것은 겸손하고 진중한 젊은 예술가의 마음이다.









- 2021년 7월, 소서 날













+




한 데서 들숨과 날숨이 엇갈리는 듯. 원추리꽃은 밤사이 다물려있다가 아침이 되면 꽃잎을 활짝 펼친다. 펼치고 닫기를 여러 날. 마지막 날숨이 그치는 날, 다물린 꽃은 내내 피지 않은 채 조용히 시들고 진다. 소서 무렵의 동다헌 원추리. 그런 여름날 홀로 음미하는 찻자리. 숨 보듬이와 함께.











* 고대 경전을 모은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프라나(प्राणः, Prana)는 생명과 의식을 낳고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자 진정한 자아와도 동일한 것이다. 이때 진정한 자아는 한 인간이 가진 감각 경험이나 의식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개별적인 존재의 영혼이 보편적 존재로서 우주의 영혼과 본디 하나라는 형이상학이 바탕에 놓여 있다. 프라나는 샹키아 철학의 우주적 존재(푸루샤)와 다르지 않다. 우주의 존재들은 프라나를 통해 태어나고 프라나에 의해 살아간다. 그리고 죽을 때는 그들의 개별적 호흡이 우주적 호흡 속으로 용해된다. 프라나는 존재인 동시에 비존재이며, 모든 지식의 원천이다. 

- 이 글에서는 글의 성격과 담고 싶은 주제에 맞추어 인도 철학의 프라나를 '끊임없이 흐르고 마르지 않는 우주의 힘'으로 표현했다. 세세한 이론을 설명하기 대신 커다란 생각 덩어리를 간단히 이야기한다. 추상적인 개념을 우화처럼 표현한 탓에 애매하게 여겨질 요소가 많다. 좀 더 꼼꼼히 살피고 싶다면,  [우파니샤드], 파탄잘리의 [요가디피카], 아헹가의 [요가수행디피카] 등을 참고하면 좋다.

조회수 26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